도덕경 해석 제2장 8장 12장 38장 48장 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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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을 보면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착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가지고 못 가짐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
어렵고 쉬움도 서로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
길고 짧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
악기 소리와 목소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어울리는 것
앞과 뒤도 서로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러한 내용이 나오는데 사물을 볼 때 우리가 좋다 나쁘다를 보면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좋다는 것도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보면 신제품이 항상 좋다 그리고 신제품이 나오고 사람들이 그것을 쓰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이 나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신제품도 다음해에 출시되는 더 성능이 좋은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나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적인 것에 의해 사물을 판단하고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지 말고 사물의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본질을 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나는 이것이 판단력, 흔히 창의력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고정관념, 선입견 등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어렵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8장을 보면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도덕경에서는 물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은데 물은 자연에 가장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내가 강조하는 순리대로의 삶. 억지로 하지 않고 되면 되고 안되면 안 되는 데로 그냥 사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을 도덕경에서는 자주 강조한다.

12장을 보면

다섯 가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소리로 사람의 귀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 사람의 입맛이 고약해집니다.

말달리기, 사냥하기로 사람의 마음이 광분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로 사람의 행동이 빗나가게 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끝을 모르는 욕심을 부리다 보면 화를 입는다. 라는 이야기를 살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욕심을 부릴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다 보면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욕심을 절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입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를 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우리 두뇌가 이득을 취했던 경험, 좋았던 경험이 있으면 그것을 자꾸 찾아가게 만드는데 욕심을 부려서 성공을 하게 되면 더 큰 욕심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지나친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에 의해 자신이 화를 입는 다는 것이다.

38장을 보면
훌륭한 덕의 사람은 자기의 덕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
훌륭하지 못한 덕의 사람은 자기의 덕을 의식합니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덕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일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훌륭하지 못한 덕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합니다. 억지로 일을 할 까닭이 많습니다.
훌륭한 인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억지로 일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훌륭한 의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합니다. 억지로 일을 할 까닭이 많습니다.
훌륭한 예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응하지 않기에, 소매를 걷고 남에게 강요합니다.
도가 없어지면 덕이 나타나고, 덕이 없어지면 인이 나타나고, 인이 없어지면 의가 나타나고, 의가 없어지면 예가 나타납니다. 예는 충신과 신의의 얄팍한 껍질, 혼란의 시작입니다.

이런 내용이 있는데 상당히 복잡해 보인다. 나는 이것을 보고 당시 심리학이 없었을 때 인데 이 도덕경을 작성한 노자는 사람의 심리의 매우 깊은 부분까지 알았던 사람이라 생각한다.
한국은 유교사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추석이 한국에서 가장 큰 대명절인데 가족들이 모여 차례상을 차린다. 이것은 유교문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공자사상을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다. 그리고 예의를 강조하는 사회이다. 한국과 같이 예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은 나이가 한살이라도 높으면 그 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근대 위의 내용을 보자 아랫부분에 ‘훌륭한 예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응하지 않기에, 소매를 걷고 남에게 강요합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예의를 그렇게 좋게 표현한 것 같지는 않다. 예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는 많은데 자기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그 사람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나이 때문에 예의를 강조하는 경우를 살면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면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나이 몇 살 더 먹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 있다. 그게 사실 당연하고 맞는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나이차이가 있어도 잘 모르는 사람한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가지고 막대하면 안 된다. 근대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소매를 걷고 남에게 강요한다. 예의를 지키라고.
도덕경은 예를 거의 가장 낮은 경지의, 좋지 못한 것으로 표현한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는데 예의를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경에서는 ‘도’를 가장 높은 경지로 보고 오직 도만 따라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 다음으로는 ‘덕’인데 도를 따르면 덕이 생겨나고 그 덕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경은 ‘도’와 ‘덕’의 경전이다.
‘도’는 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냥 하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 설명하기 상당히 어렵겠지만 단순하게 설명하라고 하면 그냥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고 머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사는 것. 그냥 하는 것. 근대 욕심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그렇게 되는데 욕심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사는 것, 그냥 하는 것, 정도로 나는 표현할 수 있다.
‘덕’은 쌓이는 것인데 그냥 살고 그냥 하다 보면 거기서 물질적인 것이나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나 은혜 같은 것이 쌓이게 된다. 욕심 없이 도를 따르고 살다 보면 덕이 쌓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덕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지금 내가 설명한 도와 덕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간략하고 단순하게 설명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인의예지가 나오는데 한국에서 강조하는 사상이다. 초등학교에서 배우고 아주 위대한 사상으로 인의예지를 가르친다. 근대 도덕경에서는 인의예지가 거의 필요 없는 것,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의리도 예의도 자연스럽게 생겨나서 하는 것이지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생겨난 것은 오래 지속도 어렵고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억지로 강요하고 생각할 시간에 도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도를 얻으면 덕이 생기고 그 덕을 통해 사랑, 의리 예의 다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이다.
특히 지혜를 가장 낮은 단계로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지혜는 잔머리에 해당된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을 때 그것을 얻기 위해 머리를 쓰는데 머리를 써서도 얻지 못하면 더 복잡한 경로를 만들어서 그것을 얻으려고 한다.
한국영화를 예로 들으면 한국영화 같은 경우 범죄 영화가 많다. 제작비도 크게 들지 않으면서 관람객들도 편하게 볼 수 있어 흥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지능범죄 이야기도 많은데 정말 시나리오를 말도 안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속고 속이고, 그 속이던 사람이 속이기 위해서 속아준 척을 하고 아주 머리 속이 혼란스럽다. 그리고 한 명을 속이기 위해서 엄청난 세트 장을 만들고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반전에 반전, 거기에 또 반전이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광인데(내가 수집한 영화만 500편이 넘는다.) 근대 특히 한국지능범죄 영화는 반전을 몇 번을 만들고 한 명을 속여서 무엇을 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머리 속이 아주 바빠 보인다. 반면 서양 지능영화를 보면 한국과 같이 심하게 시나리오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서양 영화를 보면 반전이 없는 상태로 말 그대로 뻔하게 진행되는 스토리가 더 만혹 반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번뿐이다. 막 한국영화처럼 이단 삼단 반전을 만들면서 시나리오를 짜지 않는다.
지혜라는 것 머리를 더 쓰고 더 많이 생각한다고 해서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지능범죄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이다. 영화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현실세계에서 영화처럼 머리 쓰면서 살려고 하면 손해보기 십상이다. 누구 한 명을 속이기 위해서 가상에 회사를 차리고 대규모 알바를 써서 실제직원인 것과 같이 꾸미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그냥 영화니깐 재미로 볼뿐

그냥 살라는 것이다. 되는 일은 그래도 하고 안 되는 일을 하지 말고 그것이 도를 따르는 일이다. 그리고 도를 따르고 도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48장을 보면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십시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것을 배우느냐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을 배우면 오히려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는 졸업을 했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한 글자도 안 했다고 말할 정도로 공부를 안 했다. 반에서 뒤에 5등안에는 항상 들었다. 내 기억에 뒤에 2등 3등정도를 항상 유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에서 1등은 운이 따라야 한다. (찍은 것이 누가 더 많이 맞느냐에 따라 결정됨으로) 내가 유일하게 공부한 것은 남자중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를 남녀공학으로 갔을 때 여자들한테 멍청한 이미지로 보일 것이 두려워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 시험에서 12등인가 그 정도 했었고 그 이후로 다시 뒤에서 5등안을 유지했었다.
내가 공부를 안 했던 이유는 책을 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것을 왜 알아야 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안 했던 것을 잘했다고 내 스스로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교공부는 살면서 대부분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그들이 배우는 공부는 사회 나가면 다 필요가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을 채용하는 대기업, 공기업들은 그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냐 안 했냐를 볼 것이며 내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채용하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볼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시키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할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사람들은 시키는 일을 실수 없이 수행할 사람들이다. 출석이나 기타 성실도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쓰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배운 것은 회사에서 필요가 없다. 단지 성실한 뽑고 가르치면서 회사에서 쓰는 것이다.
적어도 50%이상은 그런 일반적인 코스로 자라서 취직하고 평범하게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길로 가기 위해서는 학교공부를 해야 한다.

근대 그 배운 공부들이 필요한 것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런 것들을 없애라는 것이다. 우리가 학문을 쌓아가면서 잘못된 지식을 많이 입력하는데 대부분 필요가 없고 그런 것들이 고정관념 같은 것들로 무의식에 남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49장을 보면
성인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습니다.
선한 사람에게 나도 선으로 대하지만,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으로 대합니다.
그리하여 선이 이루어집니다.
신의 있는 사람에게 나도 신의로 대하지만,
신의 없는 사람에게도 신의로 대합니다.
그리하여 신의가 이루어집니다.
성인은 세상에 임할 때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의 마음에는 일체의 분별 심이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목을 집중하여 분별 심을 일으키는데
성인은 그들을 모두 아이처럼 되게 합니다.

이 글을 보면 상당히 이상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 글을 보게 되면 보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도덕경은 시의 형태로 쓰여졌으며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글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욕심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중에 하나에 포함된다.

도덕경은 주로 고정관념을 버리게 만드는 글과 욕심을 버리게 만드는 글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사람이 좋지 못한 심리에 빠져드는 것들에 대해 언급해두었다.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내가 느낀 것들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이러하고 도덕경 말고도 다른 철학들에서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사람들이 많이 하는 종교활동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교회에 참석해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욕심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

욕심을 모두 버리고 자기자신이 없어진 상태에서 ‘도’를 따라 살게 되면 ‘덕’을 얻게 되고 그 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많다라는 내용이다.
우리가 욕심 때문에 생겨난 착각과 억지로 하려고 하는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폐해를 생각해 본다면 욕심을 비우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가 철학이며 나는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생각하지 말아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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